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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주현미 – (2) 가수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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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9-11-30 20:31 조회2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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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 1975년 기념음반 고향의 품에 / (중) 1984년 가요메들리 쌍쌍파티/ (우) 1985년 데뷔앨범 비 내리는 영동교

가수 주현미는 1961년 광주광역시 동구 서석동에서 한의사와 한약재 사업을 하던 중국인 아버지 주금부와 한국인 어머니 정옥선 사이에서 4남매 중 장녀로 태어난 화교 3세 출신이다. 아버지 주금부는 중국 산둥성(山東省)의 오늘날 옌타이시(烟台) 무핑(牟平)에서 태어나 4살 때 한국으로 이주한 화교 2세였다. 이에 당시 '부계주의 국적법'으로 아버지가 한국 국적인 경우에만 한국 국적을 가질 수 있었기에 중국과 수교 이전에는 대만 국적을 가져야 했던 주현미는 서울한성화교초등학교와 한성화교중고등학교를 거쳐 중앙대학교 약학과를 졸업하였다.

 

어려서부터 노래에 뛰어난 재능을 가졌던 주현미는 광주에서 태어나 아버지가 대만과 일본을 오가며 한약재 사업을 하던 까닭으로 외가였던 전북 김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후 서울로 상경하여 한성화교초등학교에 입학하였다. 당시 초등학교 4학년 때에 MBC TV의 이미자 모창 프로그램에서 “잊을 수 없는 연인”을 불러 대상을 받았다. 이는 당시 MBC에서 1966년 처음 시작하였던 연말 가요제 10대가수청백전에서 가수 이미자가 1967년 제2회에 ‘엘레지의 여왕’으로 1968년 제3회에 ‘여자의 일생’ 그리고 1970년 제5회에서 ‘그리움은 가슴마다’로 최고 인기 가요상과 인기 가수상을 휩쓸며 전성시대를 열던 때였다. 이와 같은 1970년 5회 10대가수청백전이 처음으로 TV로 방송되면서 더욱 열기가 뜨거웠다.

 

이와 같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이미자 가수의 모창대회에서 대상을 받게 되면서 가수 조미미의 ‘바다가 육지라면’ ‘단골손님’과 같은 인기 가요를 작곡하였던 작곡가 이인권과 조미미, 최진희와 같은 가수의 노래 스승으로 대중가요 트롯의 가장 주요한 감성을 나타내는 소리 꺾기의 명인으로 유명한 아버지의 지인 작곡가 정종택에게 정식으로 노래 교육을 받게 된다. 이와 같은 교습을 통하여 한층 기량이 향상된 소녀 주현미는 작곡가 정종택의 주선과 오아시스 레코드사 손진석 대표의 배려로 1975년 한성화교중학교 2학년에 정종택 작곡의 ‘고향의 품에’와 ‘어제와 오늘’을 타이틀곡으로 한정판 옴니버스 음반을 발표하였다. 이와 같은 소녀 주현미가 1975년 첫 취입한 음반의 타이틀곡 ‘고향의 품에’는 1978년 인기가수 조미미에 의하여 오아시스 레코드사에서 정규 앨범으로 다시 발표되었다.

 

이와 같은 배경에는 1961년 7살 나이에 ‘효녀심청 되 오리다’ 로 데뷔하였던 가수 하춘화가 1971년 ‘물새 한 마리’로 거듭난 이후 1973년 ‘연포 아가씨’ 1974년 ‘난생 처음’으로 연이은 대 히트를 기록하면서 1971년부터 1973년까지 mbc 10대가수청백전 10대 가수에 선정되는 기염을 토하다가 19세였던 1974년 MBC 10대 가수가요제로 바뀐 해에 인기가수상을 거머쥐면서 하춘화 시대를 열었던 상황도 한 몫을 하였다.

 

이렇게 일찍 가수의 문을 두드렸던 주현미는 화교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9년 중앙대학교 약대에 외국인 특별전형으로 입학하였다. 그는 화교학교에서 중국어로 늘 공부해왔던 터라 한국어 대학생활에 어려움이 많아 대학 1학년을 유급하였다. 다음 해 1981년 대학 2학년이 되어 여름방학 기간에 계절학기 강의를 듣고 나오던 길에 중앙대 약대 음악 그룹 인삼뿌리(Ginseng Radix)가 MBC 강변가요제 출전을 위한 음악 소리에 끌려 연습 장면을 보며 흥얼대던 노랫소리를 마침 지나가던 그룹의 리더 선배가 듣게 된다. 이에 놀라 당시 팀의 여성 보컬에 어려움이 있었던 선배가 가요제 출전을 권유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잠재된 열망이 깨어나 즉석에서 이를 승낙하였다. 이렇게 참여하게 된 1981년 제2회 MBC 강변가요제에서 ‘이 바다 이 겨울 위에서’로 중대 약대 그룹 인삼뿌리 2기는 장려상을 받았다.

 

이렇게 다시 음악과의 인연을 마주하게 되었으나 약대생 주현미는 1984년 학교를 졸업하고 약사면허증을 취득하여 서울 남산자락 필동에 어머니의 도움으로 한울약국을 개업한 이후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약국경영에 몰두하였다. 이때 다시 찾아온 음악 선생 작곡가 정종택에 의하여 주현미 가수의 운명적인 탄생이 예고되었다.

 

당시 상황을 살펴보면 1974년 ‘말해줘요’로 데뷔하였던 김연자 가수가 1981년 트로트 메들리 ‘노래의 꽃다발’이라는 앨범을 발표하면서 큰 인기를 얻고 있었다. 이어 1984년 백승태의 흘러간 가요 메들리 앨범 ‘노래하며 춤추고’가 세간의 대중적인 히트를 기록하면서 당시 오아시스레코드사가 메들리 음반을 기획하였다. 이에 인기가수 조미미 메들리 음반을 준비하여 녹음일이 잡혔으나 개런티 문제로 갑자기 불발되면서 작곡가 정종택이 뛰어난 가창력을 앞세워 무명의 주현미를 적극 천거하였다.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가수 출신 작곡가였던 김준규의 개인녹음실에서 주현미의 독집으로 녹음된 노래를 들었던 당시 오아시스레코드사 문예부장을 맡고 있던 작곡가 박성규와 가수출신 작곡가 김준규는 주현미의 튀어난 가창력과 호소력이 깊은 노래에 직감적으로 스쳐가는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이에 가수 출신 작곡가 김준규가 녹음하여 주현미와 김준규의 노래를 한 소절씩 편집하여 동시 녹음된 효과를 얻어 낸 것이다. 이렇게 탄생한 음반이 주현미와 김준규의 메들리 음반 ‘쌍쌍파티’이다.

 

이와 같은 메들리 음반 ‘쌍쌍파티’는 여태껏 들지 못하였던 혜성처럼 나타난 여가수의 애절한 목소리가 대중의 마음을 파고들면서 큰 인기를 얻었다. 이어 당시 카세트테이프 보급이 활기를 띠면서 그 시너지가 더욱 크게 나타났다. 주요 도시 시내 노점상과 고속도로 휴게소 등에서 카세트테이프 음반이 하루에 1만 개 씩 팔리는 열풍을 몰고 왔다. 이와 같은 메들리 음반 ‘쌍쌍파티’의 인기가 거리와 골목을 점령하면서 주현미의 재능을 가장 먼저 감지하였던 작곡가 정종택은 주현미의 독집 음반 발표를 주선하였다. 이렇게 발표된 노래가 가수 주현미의 실질적인 데뷔 음반인 1985년 봄에 출시된 ‘비 내리는 영동교’였다.

 

여기서 잠시 주현미라는 가수에 탄생에 주역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닌 작곡가 정종택에 대하여 짚고 가야 한다. 작곡가 정종택은 트롯의 감정을 쥐고 펴는 꺾기 의 명인으로 당시 가수 지망생들에게 잘 알려진 작곡가로 주현미의 천부적인 재능을 분명하게 감지하였다. 여기서 살펴 가는 대목은 소리와 리듬의 음정을 변화시키는 트롯의 감정을 가장 깊은 울림으로 연결하는 창법 꺾기에 대해서이다. 대체로 이를 음의 진동인 바이브레이션(비브라토)과 쉽게 혼동한다.

 

바이브레이션이란 이와 같은 창법을 구성하는 발성의 기법이다. 바이브레이션은 기본적으로 턱과 성대의 변화로 나타나는 성대 바이브레이션과 음의 높낮이를 조율하는 후두에서 얻어지는 후두 바이브레이션, 그리고 가슴의 변화에서 생성되는 흉식 바이브레이션 모두가 발성의 감정을 나타내려는 기법이다. 그러나 트롯의 꺾기란 노래에 담긴 감정을 가장 깊게 전달하는 최적화된 느낌으로 음의 높낮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천부적이거나 각별한 노력을 요구하는 창법이다. 이와 같은 창법 꺾기의 명인 작곡가 정종택은 주현미 가수의 재능을 누구보다 빠르게 감지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작곡가 정종택의 따님 또한, 남도의 섬 완도 출신으로 ‘당신 때문에’ ‘꽃비 여인’ ‘당신 때문에’ ‘못 잊을 완도항’으로 활동 중인 트롯 가수 정정아이다.

 

(이와 같은 트롯의 창법 꺾기에 대한 깊숙한 내용은 실로 많은 이야기가 있다. 창법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음과 음 사이가 끊어지지 않도록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노래하여 아름다운 노래를 추구한 서양의 대표적인 창법 벨칸토 창법(bel canto)은 그 방식은 달라도 의식이 맞닿아 있다. 즉 극히 빠른 템포의 변화에도 그 음들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표기법 레가토(legato)에 대한 의미이다.)

 

(나아가 일부에서 우리나라 시대의 애환을 관통하여온 트롯에 대하여 일본 대중가요 엔카(演歌/艶歌)의 유래설을 들먹이는 사실은 매우 잘못된 것이다. 일본의 대중가요 엔카가 네 번째 음 '파'와 일곱 번째 음 '시'를 배제한 도-레-미-솔-라의 요나누키(ヨナ拔キ)장음계에서 3도씩 내린 도레미솔라의 단조 5음계를 기본으로 하는 일본 엔카가 일제 강점기에 한국에 도입되었다는 이유로 주장하는 일본 기원설은 일본 엔카의 창시자 고사 마사오(古賀政男)가 한국에서 유년 시절부터 고등학교까지 살았던 감성에서 우리 전통 민요의 감성과 가락을 차용하였음을 스스로 고백한 사실에서 깊숙하게 헤아리면 헤아릴수록 우리 음악의 바탕이 강하게 드러나게 된다.)

 

(외려 우리의 트롯에 담긴 깊은 감성의 울림에 대한 더욱 절실한 전통적인 연구는 역사적으로 깊은 연관성이 있는 몽골의 전통 음악에 담긴 흐미(khoomei)창법이다. 흐미창법이란 자연이 품은 배음의 원리를 헤아려 자연에 담긴 다양한 소리를 동시에 내는 지혜의 창법이다. 세계적인 음악가들은 이와 같은 신비의 창법에 대한 연구로 뉴에이지 음악의 새로운 세계를 열었다. 기회가 되면 그동안 필자가 헤아려온 이야기들을 소개하기로 한다,)

 

▲ 주현미 TV 목포의 눈물과 가거라 삼팔선 편    

 

이와 같은 이야기를 안고 가수 주현미의 탄생을 알린 ‘비 내리는 영동교’는 작사가 정은이와 작곡가 남국인 부부의 작품이다. 작곡가 남국인은 1959년 국민가요 ‘동백 아가씨’의 작곡가 백영호에 의하여 1959년 ‘녹슬은 기타’로 데뷔한 가수였다. 이후 작곡가로 변신하여 1970년 김부자의 ‘당신은 철새’ 1971년 나훈아의 ‘가지 마오’ 1972년 남진의 ‘임과 함께’ 김상진의 ‘고향이 좋아’ 1983년 설운도의 ‘잃어버린 30년’에 이르는 불멸의 히트곡을 작곡하였다. 작사가 정은이와 작곡가 남국인 부부가 함께 만든 노래는 설운도의 ‘잃어버린 30년’의 원곡 '아버님께'와 이선희의 ‘갈바람’과 ‘잃어버린 약속’, 문희옥의 ‘사랑의 거리’, 그리고 남진과 장윤정의 듀엣곡 ‘당신이 좋아’ 등 주옥과 같은 노래들이 많다. 바로 주현미의 1985년 데뷔곡 '비 내리는 영동교'에서부터 1986년 '눈물의 블루스' 1988년 ‘신사동 그 사람' ‘비에 젖은 터미널'과 같은 히트곡이 정은이, 남국인 부부의 작사 작곡에서 탄생한 노래들이다. 

     이일영(한국미술센터 관장, 칼럼니스트, 시인, artww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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