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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주현미 – (5) 가요 메들리가 낳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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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9-12-05 10:03 조회11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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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수 주현미 ‘기타 반주 옛날 노래 메들리’앨범     © 이일영 칼럼니스트


  

가수 주현미의 노래에 담긴 상세한 이야기를 접근하게 되면 먼저 당시 시대 상황과 사회 분위기를 살피게 된다. 이는 대중가요란 시대의 등불과 같아서 동시대의 사회 분위기와 긴밀한 연관성을 갖게 되는 까닭이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1984년 주현미 가수가 가요 메들리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던 시대 상황을 살펴보면 1980년 신군부에 의한 제5공화국이 출범하면서 사회 전반에 깊숙하게 팽배하였던 국민의 억압된 감정을 해소하려는 일단의 조치가 이루어졌음을 알게 된다.

 

바로 교복 자율화와 야간 통행금지 해제 그리고 해외여행 자율화와 같은 변화의 바람을 예고한 정책이었다. 이어 세계적인 경제 호황으로 자본 자율화라는 세계를 향한 개방의 문을 열리면서 유가와 금리와 환율의 이른바 삼저현상이 겹쳐왔다. 이에 무역흑자가 지속되면서 선진국을 지향하는 스포츠 외교 정책을 추구하게 되면서 아시안 게임에 이어 하계올림픽 유치가 이루어졌다.

 

이와 같은 사회 분위기 속에서 주현미 가수의 가요 메들리는 일반 서민의 오랫동안 짓눌린 감정을 토로하는 비상구와 같았다. 오랫동안 익숙하게 들어오며 흥얼거려왔던 흘러간 노래들이 각 노래가 가진 고유한 음악이 아닌 신명의 흥취를 일으키는 트롯 리듬 속에 솔깃하게 들려오는 무명 가수의 노래는 바로 서민 자신의 노래와 같았던 것이다. 이는 보편적으로 유명 가수의 노래를 따라 부르거나 흥얼거릴 때마다 벽을 세웠던 실력의 차이가 필요하지 않은 쉬운 리듬이 큰 몫을 하였다, 이에 무명가수와 함께 부르는 신명의 흥취가 넘쳐나면서 서민 스스로가 가수와 동행하게 되는 이심전심의 감정을 공유하며 거리와 안방을 점령하게 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짚고 가는 대목은 주현미의 가요 메들리 이전 김연자 가수의 가요 메들리가 많은 인기를 가져왔던 내용이 살펴진다. 김연자 가수는 1980년이 저물어가던 12월 20일 ‘노래의 꽃다발’이라는 최초의 가요 메들리 앨범을 발표하였다. 이와 같은 최초의 가요 메들리에 담긴 흘러간 노래에 대한 향수와 감성이 겹쳐오면서 다음 해 큰 인기를 얻게 되었다.

 

이와 같은 김연자의 가요 메들리를 시작으로 2년 후인 1982년 12월 10일 등장한 메들리 음악이 있었다. 바로 1981년 결성된 '강병철과 삼태기' 그룹의 ‘삼태기 메들리’였다. 이와 같은 ‘삼태기 메들리’는 민요와 동요에서부터 대중가요와 팝송에 이르는 97곡의 노래 중 주요한 구절을 이어간 메들리였다. 이는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에서도 최초라 할 수 있는 후크 송(hook song) 계열에 속하는 메들리였다. 이와 같은 후크송이란 낚싯바늘을 뜻하는 훅(hook)에서 유래된 명칭으로 즉 귀에 걸리는 노래라는 뜻으로 록과 힙합 음악의 멜로디 라인이거나 가사에서 부분적으로 활용되었다. 이와 같은 최초의 후크 송 ‘삼태기 메들리’는 많은 인기를 얻었으나 1988년 11월 그룹 리더 강병철이 안타깝게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면서 해체되었다,

 

잠시 여기서 이와 같은 후크송에 대하여 짚고 갈 이야기가 있다. 이는 2008년 인디밴드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과 장기하와 협연하여 홍대 공연장에서 미국의 얼터너티브 록 그룹 너바나(Nirvana)의 ‘젊은 영혼처럼 느껴봐’(Smells Like Teen Sprits)의 음악을 바탕으로 온갖 장르의 노래를 불렀던 적이 있었다. 인디 음악 마니아들이 이와 같은 영상을 공유하면서 이를 ‘삼태기 메들리’의 뒤를 이은 록 후크송 ‘노루바나’ 로 알려졌다. 이와 같은 명칭 ‘노루바나’는 잘못된 해석의 언어로 이는 일체의 번뇌가 소멸된 상태를 뜻하는 열반(涅槃)의 산스크리트어 니르바나(Nirvana)를 말하는 사실도 짚고 갈 대목이다.

 

▲ (좌로부터) 김연자 가요메들리 앨범/ 삼태기 메들리/ 김연자 김준규 가요메들리 쌍쌍파티 앨범/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과 장기하 록 후크송 니르바나(Nirvana) 공연 장면/     © 이일영 칼럼니스트

 

이와 같은 이야기를 안고 김연자 가수의 가요 메들리에 이어 발표된 주현미의 가요 메들리 음반 ‘쌍쌍파티’ 가 당시 더욱 일반 대중하게 친숙하게 다가온 내용을 헤아려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살펴진다. 김연자 가수의 가요 메들리는 혼자서 노래하는 메들리였지만, 주현미 가수의 가요 메들리는 ‘쌍쌍파티’라는 제목처럼 여와 남이 한 소절을 씩을 부르는 메들리로 한결 자연스러운 느낌이 주어졌다. 또한, 이를 따라 부르게 되면 남녀 누구나 상대 가수와 자신이 함께 부르는 것과 같은 효과의 심리적 요인도 작용하였다. 또한, 당시 남자 파트를 녹음하였던 김준규 가수의 뛰어난 노래 실력도 주현미 가수의 노래를 빛나게 한 주인공이었다. 이는 김준규가 디스코의 열풍을 몰고 온 밤차의 가수 이은하를 탄생시킨 노래 스승이었던 사실과 지방 방송국 전속가수로 활동하며 한때 유명 가수의 무명시절에 그들과 함께 가수의 꿈을 키웠던 만큼 뛰어난 노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나아가 김연자 가수 메들리는 메들리라는 특성을 중시하여 몇 개의 악기가 연주하는 반주 음을 낮추어 노래에 집중력을 키웠다. 그러나 주현미 메들리는 전자오르간뿐이었다. 당시 연주를 맡았던 이가 아코디언 연주자이며 전자오르간 연주자인 정주희 작곡가이다. 그는 송춘희 가수의 눈물의 한탄강에서부터 나훈아 1집 수록곡 ‘사랑은 주는 것’이외에도 동시대 주요 가수들의 노래를 한 곡씩은 작곡하였을 만큼 실로 많은 노래를 작곡하였다. 또한, 당시 그는 오아시스 경음악단 이외에도 시대적으로 대중음악의 발상지라 하여도 과언이 아닌 카바레 생음악을 전담하는 정주희 악단을 운영하고 있었다.

 

당시 그의 전자오르간 반주에서 주현미의 가요 메들리 ‘쌍쌍파티’가 탄생한 것이다. 여기서 살펴지는 내용이 카바레 생음악에 통달한 연주자의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절묘한 리듬으로 가수의 노래를 돋보이게 하면서도 카바레 현장을 누빈 오랜 경험에서 체득된 가장 신명나는 동작의 리듬을 균일한 속도로 반주하여 노래를 듣는 사람의 흥을 일깨우고 따라 부르기에 가장 편한 음악을 반주하였다. 이와 같은 사실은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가수 자신이 더욱 절실하게 감지하고 있을 것이다.

 

여기에 덧붙이는 필자의 생각은 가요 메들리 노래 구성에 담긴 내용이다. 당시 김연자 가요 메들리 노래의 꽃다발은 3집을 발매하였으며 주현미의 가요 메들리 ‘쌍쌍파티’는 5집을 발매하였다. 이와 같은 가요 메들리가 인기를 얻게 되면서 당시 김연자 가요 메들리가 ‘노래 올림픽’과 ‘노래 실은 관광열차’등으로 발매된 음반의 종류가 많았다. 주현미 또한, ‘노래 대결 메들리’ ‘기타 반주 옛날 노래 메들리’등 여러 형태의 가요 메들리가 뒤를 이었다.

 

김연자 가수의 가요 메들리는 1집에서 A 면 19곡 중 ‘기타부기’, ‘열아홉 순정’, ‘비 내리는 호남선’과 같은 7곡의 흘러간 옛 노래와 배호의 노래가 4곡 ‘새타령’, ‘창부타령’으로 이어지는 민요 가요가 4곡이었다. B 면에는 당시 최근 유행하였던 6인조 혼성밴드 들고양이들(와일드 캐츠)의 ‘마음 약해서’, 나훈아의 ‘사랑은 눈물의 씨앗’, 김세화의 ‘나비소녀’와 같은 히트곡들을 메들리로 구성하였다.

 

이와 달리 주현미의 가요 메들리 ‘쌍쌍파티’는 A 면 ‘무정한 그 사람’, ‘남원의 애수’, ‘청춘 등대’와 같은 9곡과 B 면 ‘청춘고백’, ‘나는 울었네’, ‘울어라 기타줄아’와 같은 9곡이 실렸다. 이와 같은 구성은 주현미의 가요 메들리는 2집에서도 당시 세상을 흔든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 이외에는 대체로 흘러간 옛 가요로 구성되었다.

 

이는 당시 1984년을 기점으로 생각해보면 1945년 광복 당시 10살의 나이가 50살이다. 이어 1950년 육이오 전쟁 당시 10살의 나이가 45세이다. 이는 대중가요의 특성이 조국 광복과 민족전쟁이라는 역사적인 격동기에 가장 가슴에 닿아오는 가사의 노래들이 많은 점이다. 이와 함께 당시 45세에서 50세의 나이는 가장 활동적인 세대로 구매력이 좋은 연령대였다. 이와 같은 점에서 변화된 리듬으로 다가온 흘러간 옛 노래의 가요 메들리가 강한 향수와 함께 가슴에 닿아오는 감성이 한층 크고 높았을 것이다.

 

이와 같은 무명가수 주현미의 가요 메들리가 세상을 뒤흔든 예측하지 못한 결과를 맞게 되면서 데뷔곡 취입을 서둘러야 했다. 이에 부부인 정은이 작사가와 남국인 작곡가의 작품으로 1985년 가수 주현미의 오늘이 존재하게 한 데뷔곡 ‘비 내리는 영동교’가 탄생한 것이다. 선풍적인 인기를 가져온 노래 ‘비 내리는 영동교’ 이후 1988년 말 발표된 ‘신사동 그 사람’은 주현미라는 가수를 우리 가요사에 영원히 등재한 대 히트곡이었다.

 

이와 같은 주현미라는 가수가 탄생한 주역의 노래 ‘비 내리는 영동교’와 ‘신사동 그 사람’에 담긴 가수의 독창적이며 특성적인 음색과 창법에 대한 이야기들을 다음 편에 마지막 정리하며 글을 마치려 한다.

이일영(한국미술센터관장, 칼럼니스트,시인, artww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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